의자에 앉아 있다.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 반면에 방 안에선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이 모든 혼란은 내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걸까? 오랫동안 혼자 있던 이 방,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벨벳 안락의자, 책장, 오래된 유선 전화기.
책상 위의 스탠드와 차를 우려내기를 기다리는 중국 찻주전자.
방을 이런 식으로 꾸며놓은 이유가 사람들에게 마치 “집”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라는 건 본 누구도 알수 있다.
정신과 진료실이기에 많이 “아늑해” 보인다.
물론, 이런 따뜻함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랜 침묵 끝에 문이 열리고, 크림색 바지와 흰 셔츠에, 젊어보이지 않는 여자 한명이 들어온다. 안경을 썼지만 당장이라도 눈에서 떨어질 것 같아 보인다. 그 여자가 활발하다는 흔적이다 . 손에 서류철 들고있고 팔에는 책상에 기댄 흔적이 있다. 셔츠에 작은 커피 얼룩과 눈이 빨간거 보면 피곤한것을 알수 있다. 아마도 커피 얼룩은 아직 보지 못한 모양이다. 봤더라면 바로 닦아놨을 테니까. 깨끗하게 다림질 된 셔츠와 잘 묶어놓은 머리를 보면 꼼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드디어, 예상했던 음색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안녕하세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선생님. 잠시 쉬세요. 저 시간 있거든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파란 의자에 앉는다.
“시작하시죠.”
손에 들고 있는 문서철 뒤집히며 계속 말한다.
“런던 정신과 신경질환병원에서 여기로 오셨군요. 보고서 읽어봤어요.”
“내용은 알아요. 간단히 ‘무감정’이라고 되어 있죠.”
그녀는 내 얼굴을 잠시 살펴본다.
“네, 하지만 이걸로는 병원 입원 이유로 충분하지 않아요, 특히 런던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셨어요?”
“어떤 일들은 설명하기가 너무 오래 걸려요, 선생님.”
“저는 시간 있어요. 어떻게 감정을 잃게 되셨나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머릿속에 도는 소리들을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선생님, 피곤해 보이세요. 선생님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나의 긴이야기를 시작한다.
“8살이에요. 집안에서의 긴장감을 몹시 느껴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해요. 뭔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것도 이해못해요. 그래서 누나에게 달려갔어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해 물었더니, 그냥 손님이 오기 때문에 긴장한 거라고 답해줬어요.
12살이었어요. 친구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어요. 무척 시끄러웠어요. 저는 탁자 밑에 숨어서 귀를 막고 있었어요. 다시 누나가 저를 찾아냈어요. 항상 누나가 도와줬어요, 선생님. 다시 이 움직임이 뭔지 물었더니, ‘공포’라고 대답했어요.
13살이었어요. 누나가 아팠어요. 누나의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어. 그리고 또, 누나가 왜 그렇게 된 건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누나에게 달려가서 어린아이처럼 가늘게 안아줬어요. 이번에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해 묻지 못했죠.
14살이었어요. 활기가 넘쳤었어요. 누나 방으로 뛰어갔어요. 누나는 아직 아팠어요. 누나에게 가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린 시절의 사랑’이라고 대답하고 웃어줬어요.
이제 세 가지 감정을 알아요, 선생님.
16살이었어요. 묘지에 와 있었어요. 누나가 매장되고 있고, 저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것 처럼 느껴졌었어요.
18살이었어요. 친구가 누나의 대해서 안좋은 말을 했어요. 방 안을 전부 파괴하고 싶었어요. 이 새로 느끼는 감정은 분노였어요.
22살이었어요. 사촌 동생이 강제로 외출 시켰어요. 집 밖으로 안나간다고 투덜 거리고 있었어요. 오픈카 타고 있었고,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촌 동생에게 이 감정이 뭔지 물어보니, ‘흥취’라고 답해주었어요.
이제 46살이에요. 제 안에 다른 감정이 있어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음…이 감정은… 설명 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 말씀 해주세요.”
선생님이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슬픔” 이라고선생님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나는 계속한다.
“선생님, 종교적인 사람이신가요? 저는 제가 그렇다고 말 못하거든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 만나고 책도 읽으면서 종교에 더 가까워졌어요. 제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얼마나 절망 했는지 처음으로 기도 할 때 깨달았어요. 친구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저에게 다가와서, ‘너의 지친 마음에게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말해봐’라고 말해주었어요.
누군가에게 제 마음을 연거 선생님이 처음 아니에요. 처음으로 예배할때 쓴 깔개에게 말했거든요 . 그 날부터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죠.”
선생님이 생각에 잠긴채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할 얘기는 더 있지만 나중에 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선생님.”
“그러시죠.” 하고, 병원 직원을 부른다.
선생님 노트의 쓰인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알렉시시미아.”
Note: “알렉시시미아”는 감정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데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